최근 환율 변동 폭이 커지면서 외환투자에 관심을 갖는 이들을 많이 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외환투자가 우리들보다는 훨씬 더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와타나베 부인>이라는 말까지 나와 있을 정도 입니다. 이 말은, 실수요가 아닌 환차익을 겨냥해서 환거래를 하는 일본사람들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은행예금이나 적금을 들어도 이자가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주부들은, 즉 와타나베 부인들은 다른 나라의 고금리 예금이나 채권 같은 다양한 투자수단에 일본 돈을 넣고서 운용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외환시장에서 이 와타나베 부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20~30%나 된다는 게 정설 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같은 와타나베 부인이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일본의 90년대 <잃어버린 10년>이 숨어 있다는 것 입니다.
이 <잃어버린 10년>이 갖고온 경제변화 현상을 <금융위기 이후 불확실한 글로벌 경제의 미래,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저자 데이비드 스믹, 출판사 비즈니스맵, www.bizmap.co.kr , 펴낸이 노영현, 02-774-7200)에서 하나 인용을 했습니다. 저자는 투자전략컨설팅 회사인 존슨 스믹 인터내셔널을 통해 활동하는 금융전문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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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은 실수를 저질렀다. (이 <잃어버린 10년>은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일본이 겪은 장기적인 극심한 경기침체 시기를 가리키는 말로 거품경제의 후유증을 단적으로 설명할 때에 자주 인용되는 문구다. 1990년에 주식 및 부동산 가격의 폭락으로 인해 일본 은행과 기업들이 줄도산을 했다.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면서 일본은 10년 이상 0%의 성장률이란 치욕적인 경험도 했다.) 급강하 하는 경제 때문에 은행 돈을 빌려간 대출자들이 갖고 있는 담보 가치는 대출금 크기 보다 다 작아졌다. 그런데 일본 당국은 일본 은행들이 부실채권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았다. (쉽게 말해 이 상태에서는 일본은행들은 파산을 하거나 혹은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과 전 세계 정책입안자들이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이같은 상태에서는 통화 활성화 조치가 물가에 실제로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을 두고, 유동성 함정이라고 부른다. 이 때가 되면 금리가 너무 낮아 채권과 현금을 맞교환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채권을 구입해도 유동성을 더 늘릴 수가 없다. 서로 단순히 동일한 자산을 교환한다는 의미만 있을 뿐이다.
일본의 채권은 이 잃어버린 10년 동안 미국과 비교해 25% 정도 가격이 떨어졌다. 바로 디플레이션 악순환 동안에 발생한 일이다. 엔화 가치의 실제적인 하락은 미국 달러화 대비 약50%에 달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앙은행이 장기 금리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단기금리를 관리하지만 금융시장은 장기금리를 포함한 다른 금리를 통제한다.)
장기금리는 거품이 매우 심했던 1990년에 7.5%였고, 당시 일본에서 채권투자자들은 채권을 사서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99년 채권시장에서 장기 금리는 1% 이하로 떨어졌다. 일본 중앙은행은 하룻밤 사이에 금리를 0%로 떨어뜨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또 그런 일을 하는 것 조차 너무 늦어서 통화 활성화에 아무 효과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와 비슷한 상황이 오늘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나타날 수 있을까?
누군가 저렴한 엔화 시대라고 부른 엔화 약세와 최저 금리 시대에도 승자는 있었다. 일본의 경제적 혼란을 틈타 일본의 대기업들은 큰 이익을 얻었다. 일본 대기업들은 엔화 환율이 떨어지자 수출시장에서 더 공격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었다. (다른 국가들이 국내 상품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일본 상품들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터무니없이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은 일본 대기업들은 새 기계와 장비를 구입해서 향후 글로벌 경쟁을 위한 구조조정을 해나갈 수 있었다. 그 결과 현재 일본 대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해외 사업에 더 많은 수익을 내고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일본의 중소기업들은 자금을 확보하기가 어려워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대기업보다 노동집약적인 중소기업들은 낮은 금리와 엔화 약세(엔고) 기간에 큰 시련을 겪었다. 엔화 약세 때문에 수입 에너지 가격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 문제는 일본에서 매우 중요하다. 일본은 모든 에너지를 수입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중소기업들은 일본 고용의 75%를 책임지고 있으며 대부분 일본 국내 수요에 의존해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원유와 다른 수입 원자재 가격을 내려줄 수 있는 강력한 엔화가 필요했다. (이는 일본 정책 당국이 엔저를 원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물론 1990년대 말 일본의 0% 금리 정책 때문에 일본 대형 은행들은 과거 10년 간의 잘못된 부동산 대출 관행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또 덕분에 잘못 정리된 대차대조표도 정리할 수 있었다.
거대한 일본 다국적 기업들 처럼 은행들도 역시 엔화 약세 기간 동안 내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돈값이 엄청나게 싼 시기였고, 전체적으로 금리가 너무 낮았기 때문이었다. 은행들은 예금을 최대한 활용했다. 저축이자를 거의 지급하지 않아도 되었다. 은행들은 일본 국민들이 낸 예금 돈을 갖고서 위험이 거의 없는 일본 정부 채권을 구입했다. 그래서 저축한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이자보다 1.5~2%포인트 더 많은 이익을 취했다(이같은 은행의 채권투자수익율과 실제 저축이자로 내주는 이자율과 차이가 나는 수익율을 스프레드 라고 부른다).
은행들은 스프레드를 통해 거둔 안정적인 수익을 바탕으로 점차 은행 부실채권을 빠르게 줄여나갈 수 있었다. 나중에는 마침내 대차대조표를 깨끗하게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은행들이 정부 채권에 의존했던 과정 때문에 지금까지도 일본의 통화정책은 일본 정부의 통제를 심하게 받고 있다.
이 기간에 저금리 통화정책으로 인해 또 다른 희생양이 나타났다. 바로 일본의 가계 부문 이었다. 한때 수익을 내던 가계의 예금 계좌는 아주 낮은 이자 수준 때문에 허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의 가계는 돈 때문에 질식을 할 정도였다. 당시 고령화로 가고 있던 일본은 전통적으로 부수입을 목적으로 저축이자를 기대했고, 또 실제 이에 의존해서 살아왔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돌변을 한 것이다. 저축이자를 통해서 일본 국민들이 거두어들이는 가계 수익은 1991년 31조엔 이었지만 2005년에는 3조엔으로 뚝 떨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그 사이에 총 저축액은 오히려 늘었더는 점이다. 총 저축액은 1991년 600조엔에서 2005년에는 700조엔 이상으로 커졌다.
일본의 정책 실패가 일반 일본 시민들의 삶을 얼마나 어렵게 했는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2005~2006년에 발생한 최근의 경우를 한번 살펴 보자. 일본 국민들의 하위 5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수입이 줄었다. 중간 계층에 해당하는 40%는 보너스까지 포함을 해도 연간 수입에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장기 집권을 해온 자민당이 최근 정치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같은 가격하락과 방향 없는 통화정책이라는 <일본 증후군>이 전 세계에 퍼진다면 미국과 선진국의 정치인들도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일본의 가정주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1세기에 들어서 일본의 가정주부들(혹은 가장들)은 일본의 저조한 경제성과, 특히 낮은 저축이자에 실망을 많이 했다.
가정주부 라는 말과 자본 이라는 말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1950년대 일본의 평범한 가정에서는 가정주부가 가정의 재정을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일본의 금융기관들이 남성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아이러니컬 하다. 가정주부들의 역할은 일반적인 가정의 생활양식을 반영했다. 일본의 월급쟁이 남편들은 하루에 거의 10시간 동안 일하고 2~3시간 출퇴근길에서 고생하며, 정기적으로 늦은 밤까지 상사와 술자리를 갖기 때문에 거의 집에 없었다. 따라서 가정주부들이 자연스럽게 재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부터 일본 가정주부들은 저축을 통해서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직접 발로 뛰기 시작했다. 가정주부들은 외국 기업 채권과 해외투자에서 더 나은 수익을 올렸다.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일본 가정주부들은 하룻밤 사이에 글로벌 해외 외환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공동으로 일본의 가계 저축의 상당 부분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더 높은 수익율을 제공하는 외국 채권들을 찾아 매입하는데 정통해 있었다.
현재 전 세계적인 외환거래의 20% 정도는 일본 개인들에 의해 발생한다. 그런데 그 일본개인들 거래의 대부분은 일본 가정주부들이 차지하고 있다. >>>